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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앤프로듀서/비밀이야기 · 설정

허묵 비밀 이야기

* 주인공(나)을 편의 상 유연이라고 표기합니다.
* 미완성 글입니다. 쓰는 중입니다.

 

러브앤프로듀서 허묵 비밀 이야기



시즌 1


1. 기숙사에 잠든 사자

: 미모와 지혜로 말할 것 같으면, 동양에서 온 그 음침한 녀석이 나보다 한 수 위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다!

허묵이 에드워드 6세 남자고등학교(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남자 고등학교)에 재학 중일 때다.

아서(허묵의 동창이자 룸메이트, 전교 1등)가 허묵에 대해 말하는 내용.

허묵은 이 학교에 편입생으로 들어온다. (일주일 늦게 입학했음.) 이 학교는 입학식에 참여하지 않으면 입학할 기회를 주지 않으나, 허묵은 개학 일주일 후 교복도 입지 않은 채 담임 선생님을 따라 교실로 등장한 것이다. 허묵은 아이들의 쏟아지는 관심과 질문 세례에 답하다가 고아라는 것을 밝힌다. 이 학교 학생들은 모두 고귀한 출신이었기 때문에 그런 신상은 쓸데없는 시비와 공론으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이를 우려한 아서가 허묵에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는 얘기를 왜 밝혔는지 묻지만 허묵은 그저 물음에 답했을 뿐이라 답한다. 허묵은 세상사에 무관심한 듯 보였고, 말다툼을 하려는 의도는 없어 보였다. 아서는 허묵과 친해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아서는 키가 작은 편인데, 동양인인 허묵보다 본인이 작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허묵에게 동양인들은 키가 작지 않냐고 물어본다. 그러자 허묵은 "내 키는 딱 평균이야.", "아마 네 키가 작아서 그런 거 아닐까."<<어린 허묵답다. 악의 0 팩트 100임. 아서는 허묵과의 만남이 엉망진창이라고 생각했다. 허묵이 고아라는 사실을 밝힌 이유 학생들은 허묵을 피했다. 그러나 허묵은 전혀 개의치 않아 보였다. 매일 혼자 책을 들고 기숙사, 교실, 도서관을 오갔다. 허묵은 매일 아서가 잠든 후에도 공부를 했고, 아침에 아서가 일어났을 때는 이미 책상에 앉아있었다. 이러한 허묵을 보고 아서는 '마치 피로함을 모르는 무한 동력 기계 같았다. 심지어 나는 그가 잠이 필요 없는 생물체가 아닌가 의심하기도 했다.'라고 언급한다. (허묵이 잠을 잘 안 자는 건 떡잎부터였군) 사실 허묵은 대학교에서나 배우는 내용을 읽고 있었다. 그러나 체육 시간만 되면 허묵은 여러 핑계를 대며 수업을 빠졌다. 특히 농구, 럭비처럼 단체 운동을 할 땐 더 그랬다. 허묵은 경기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항상 근처에 앉아서 학생들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했다. 허묵은 늘 투명 인간처럼 행동했지만, 허묵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허묵은 아이들을 조용히 관찰할 뿐 과하게 섞이지도, 과하게 밀어내지도 않았다. 아서는 허묵의 실력을 테스트할 수 있는 때를 기다려왔고 한 달 뒤 깜짝 시험에서 아서는 1등을, 허묵은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도 않고 너무 뒤쳐지지도 않는 5등 정도를 차지했다. 아서는 실망하고 허묵에 대한 관찰을 접는다. 후에 아서는 선택과목인 다도 수업에서 허묵을 만난다. 다도 수업은 선생님이 학생을 선택하는 과목이기 때문에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자격을 얻기 위해서도 많은 심사를 거쳐야 했다. 그러나 첫 수업 시간에 엄격하기로 소문난 선생님이 계속 허묵의 칭찬을 늘어놓았고, 첫 수업이 끝날 무렵엔 모든 학생들이 허묵의 이름을 기억하게 될 정도였다. 아서는 승부욕과 호기심에 불이 붙어 수업 시간이 끝나자마자 복도에서 허묵에게 같이 공부하자고 제안한다. 허묵은 거절하지만, 자신을 비난하는 아서에게 이유를 알려 주겠다며 둘만 있을 때 따로 직접 다도 하는 것을 보여준다. 물 흐르는 듯한 동작에 아서는 왜 평소에는 실력을 안 보여주는지 묻는다. 허묵은 "일부로 감춘 건 아니야.", "평소에 내가 보여주는 실력은 학생인 허묵으로서의 실력이고, 방금 네가 본 실력은 허묵 자신으로서의 실력이야."라고 한다. 역시 예상했듯이 허묵은 학생으로서 시험을 보거나 할 때는 성적을 적당히 조절한 듯. 허묵은 첫 학년이 끝나고 나서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다. 떠나기 전의 시험에서 허묵은 드디어 자신의 실력을 숨기지 않고 발휘해서, 전 과목에서 아서를 앞선다. 아서는 언젠간 허묵과 제대로 대결해 보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나 아서가 대학에서 졸업 논문으로 씨름할 때 세계 유수의 과학 잡지에서 허묵이 발표한 글을 본 건 나중의 일이다. (어나더 레벨)

+) 개인적으로 이 이야기는 직접 들으시길 바랍니다. 어린 허묵 목소리가 매력적임.

 

 

2. 알 수 없는 사람

: 무엇이 그의 진짜 모습일까. 어쩌면 전부일 수도, 어쩌면 전부 아닐 수도 있다.

허묵이 유연의 이웃으로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다.

허묵과 유연이 수족관에 갔을 때, 허묵이 블랙스완에서 왼쪽 눈을 찔렸을 때, 허묵이 사흘간 안 보였을 때, 독감이 퍼졌을 때, 허묵과 유연이 하데스와 대치할 때 등의 내용이다.

블랙스완 소속 사람(하데스가 데려온 사람, 편의 상 이하 P)이 아레스(허묵)에 대해 말하는 내용.

P는 블랙스완에서 평범한 축에 속한다. P는 지난 몇 년 동안 배달 일을 하면서 조직을 대신해 연모시를 감시하고 '정상적인' 삶을 살았다. P는 '허묵 교수'가 사는 아파트 단지의 경비원이 되어 그에게 소식과 정보를 은밀히 전달하라는 하데스의 지시를 받는다. 아레스가 이를 허락할 리 없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P는 '허묵 교수'가 사는 아파트 단지의 경비원이 될 수 있었다. 아레스의 생활은 단조로웠다. 퀸(유연)이라는 여자와 붙어 다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거의 혼자 다니면서 영화를 보거나 술집에 갔다. 친구가 없는 듯했다. P는 아레스 같은 사람한테는 친구가 있는 게 더 이상할 것이라 생각했다. P는 가끔 허묵과 눈이 마주치면 공손하게 인사를 했고, 허묵은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를 받았다. 심지어는 친근한 웃음을 짓기도 했다. 이러다 보니 P는 '아레스'와 '허묵'이 다른 사람이라는 착각을 자주 하게 됐다. 감탄이 절로 나오는 완벽한 연기였다. 

P는 마침내 임무에 진전이 생겼다. P는 동료와 교대 후 아레스와 퀸을 쫓아 수족관에 도착했다. P는 관광객으로 위장한 뒤 미행하며 두 사람을 주시했다. 아레스는 완벽하게 '허묵'을 연기했고, 퀸 앞에서 그는 언제나 예의 바르고, 봄바람처럼 따뜻했으며 흠 잡힐 만한 일을 하지 않았다. 하데스는 "여자의 마음을 가지고 노는 데는 아레스만 한 적임자가 없다"라며 반쯤 농담하곤 했다. (wow...) 아레스는 미행을 눈치챈 듯했고, P는 잠시 거리를 벌린 뒤 두 사람이 발걸음을 멈췄을 때 다시 다가갔다. 쉼터에 도착했을 때 아레스는 잠든 유연을 조심스레 의자에 앉히고 있었고, 평소 엄숙했던 아레스의 얼굴에 온화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걸 본 P는 믿기지 않아 엉겁결에 고개를 내밀었다가 아레스에게 딱 걸린다. P는 그렇게 미행을 들킨 후로 웬만하면 아레스와 부딪히는 일을 피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에 근무를 하던 P는 비상벨을 통해 엘리베이터에 유연이 갇히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수리하러 간다. P가 열쇠로 엘리베이터를 열었을 때 뒤에서 허묵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기서부터는 제게 맡겨 주세요. 부탁합니다." P는 아레스를 보고 이 사람은 허묵이라고 느낀다. 유연을 위로하며 구조하는 허묵을 보며 P는 어쩌면 살아있는 동안 아레스가 임무에 실패한 장면을 보게 되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P는 이러한 자신의 추측(아레스의 변화와 일어날 가능성이 있는 변수들)을 상부에 보고해야 할지 고민했으나 P가 결정을 내리기도 전에 사태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레스의 오른쪽 눈에서 솟구치던 붉은 피는 지금까지 잊을 수 없다. 아레스가 블랙스완의 예상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레스가 떠난 뒤 하데스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아레스의 약점을 잡았다고 생각했겠지.) 하데스는 P에게 자신을 위해 아레스와 퀸을 계속 감시하라고 지시했다. 하데스는 이번이 아레스와 손을 잡거나, 그를 제거할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P는 왠지 하데스의 예상처럼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P는 촉이 좋다.)

알고 보니 P는 하데스와 함께 허묵의 꿈에 갇혀있다.(급전개이긴 한데 딱히 그 사이에 중요한 내용은 없다. 우리가 아는 내용이다. 싸움에서 아레스는 퀸을 감싸고 보호한다.) P는 "하데스는 공터에 서서 먼 곳에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았다. 그곳에는 문이 있는지 희미한 빛이 새어 나왔다. 어쩌면 우리는 금방 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라고 말한다. <<진짜일까 이것마저 헛된 희망일까 모르겠음.

 

 

 

3. 무지개와 행운

: 그것은 허묵이 그녀에게 주고 싶은 무지개와 행운이었다. 그리고···

허묵이 만년필을 잃어버리고 유연이 그걸 발견해 찾아 주었을 때다.

허묵이 비오는 날 유연과 함께 길고양이를 데려왔을 때(빗속의 데이트), 허묵이 유연에게 만년필을 선물할 때, 유연이 허묵에게 선물 받은 만년필을 잃어버렸을 때, 허묵이 두 번째로 유연에게 만년필을 줄 때도 있다. 

허묵의 만년필 시점에서 허묵에 대해 말하는 내용.

영국에서부터 허묵과 함께한 만년필이다. 떨어져 있는 만년필을 유연이 발견하고 허묵의 것일 거라고 추측한다.

허묵은 유연에게 만년필을 건네받지만 만년필보단 유연에게 더 관심이 있는 눈치다. 유연에게 다정하게 얘기하는 허묵을 보며 만년필은 허묵의 이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는 처음 들어본다고 언급한다.

허묵이 유연에게 우산을 씌워 주러 나섰던 비 오는 날, 허묵은 유연과 함께 길고양이를 집으로 데려온다. 창밖에 내리던 비가 그치고 먹구름이 사라진 하늘에는 무지개가 나타났다. 하지만 만년필은 허묵이 무지개를 보지 못할 것이고, 그러므로 무지개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줄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허묵은 색맹이다.) 하지만 만년필은 허묵의 어둡고 냉담한 눈동자에서 평소와 다른 광채를 본다. 유연이 떠난 후 허묵은 창밖의 무지개를 오랫동안 쳐다봤다. 그리고 허묵은 조용히 말했다. "비 갠 후의 무지개는 정말 아름답군." (유연의 영향으로 색을 보는 허묵.)

밝은 여름 햇살 아래에서 허묵은 유연에게 만년필을 선물한다. "이거 줄게요.", "그 만년필··· 이름이 있어요. iridescent. 행운을 뜻하는 말이죠. 내가 정말 오랫동안 가지고 다녔어요. 받아요. 이제 행운은 당신 거예요."<<찢었다!

그러나 바로 그날 해질 무렵, 만년필은 두 사람이 결별하는 것을 봤다. (허묵이 유연에게 처음으로 아레스인 걸 들킨 날.)

유연은 진화에 대해 발표하던 허묵의 발표장에서 만년필을 잃어버리고, 발표가 끝난 뒤 만년필을 찾으러 다시 발표장에 온다. 유연이 만년필을 발견하지만 허묵을 마주치고 다시 떨어트린다. 허묵은 만년필을 주워 준다. 유연은 허묵에게 만년필도 주인에게 돌아가야 한다며 돌려준다. 허묵은 유연이 떠난 뒤 만년필을 한참 내려다보더니 조용히 말했다. "바보."

그렇게 이야기는 끝난 것 같았지만, 허묵은 다시 한번 만년필을 유연의 손에 조심히 올려놓고, 몸을 기울여 유연의 귓가에 대고 말했다. "앞으로는 혼자서 위험에 맞서지 말아요. 나를 위해서···" 하지만 유연은 듣지 못했다. 유연이 정신을 차렸을 때, 유연은 이미 둘 사이에 있었던 일을 잊은 상태였다.

만년필의 첫 번째 주인은 자상한 할머니였다. 그 할머니는 허묵에게 만년필을 건네주면서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이 '행운'을 그녀에게 전해주렴."이라고 했다. << 찢었다 222

만년필의 마지막 말이 인상적이다. "주인님은 색을 잃어버렸을까? 아니면 언젠가 다시 되찾을까? 왜냐하면··· 무지개의 아름다운 색을 본 사람은 더 이상 잿빛 세상에 만족하지 못할 테니까요···." 허묵은 이제 잿빛 세상만으로는 살 수 없다.

 

 

 

4. 빙산 아래

: 그날 밤, 그의 꿈속에는 가녀린 그녀가 나타났다.

최고생명과학연구소에서 유연이 아레스와 아르테미스(블랙스완 소속)를 마주쳤을 때다.

(참고로 이미 유연이 죽고 난 후 네볼즈가 유연에 대한 기억이 사라졌을 때다.)

갑자기 나타난 유연을 제압하는 아르테미스를 아레스가 막는다. 그리곤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한다. 계속 겁 없이 허묵 앞에 나타나는 유연을 보고, 허묵은 "지난번에 만났을 때 알아차렸는데··· 도대체 왜 내가 당신을 해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하죠?"라고 한다. 허묵은 유연에게 다가가 손으로 유연의 목을 감쌌다. 허묵이 조금 힘을 주자, 유연은 표정을 일그러트리며 눈물을 흘렸다. 허묵은 그녀가 흘리는 눈물을 따라 유연의 얼굴을 천천히 바라봤다. '이래도?' 허묵은 시선을 내리깔고 손에 더욱 힘을 줬다. 마침내 유연의 눈꺼풀이 거의 감기려는 순간, 주변 공기에 미묘한 변화가 일어났다. 투명한 물결무늬가 동심원을 그리며 겹겹이 퍼져나가며 금빛을 뿜었다. 허묵은 손을 내려놨다. 유연이 거친 숨을 고르고 있을 때, 허묵은 매정하게 그녀의 운명을 선고했다. "당신은 블랙스완의 퀸이에요." 순간 주변의 공기가 굳고 엄청난 압력이 허묵의 팔뚝을 휘감았다. 허묵은 손을 움직일 수 없었다. 허묵의 얼굴에 당황이 스쳤지만, 이내 미소로 바뀌었다. 허묵은 그 힘이 어디에서 왔는지 알고 있었다. 비틀거리면서 떠나는 유연의 뒷모습을 보다가 허묵은 눈을 감았다. 그리고 그녀의 발소리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뜨지 않았다.

17 년 전 최고생명과학연구소가 유출한 자료에 의하면 특수 유전자 보유자가 실험에 참여했다고 한다. 블랙스완에서는 그 특수 유전자 보유자인 그녀를 퀸이라고 부른다. 퀸을 찾으면 진화의 열쇠를 찾는 것과 다름없었기 때문에 진화를 원하던 사람들은 광기에 젖었다. 그러나 최고생명과학연구소 측은 유출된 자료가 악의적인 조작이라고 발표한다. 그래도 퀸을 찾는 사람들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았다. 그러나 십여 년이 지날 때까지도 퀸의 흔적을 찾는 사람이 없자, 점차 퀸의 존재도 그저 날조된 소문으로 여겨졌다. 블랙스완 역시 새로운 진화 계획을 시도했다. 그 새로운 계획의 중요한 참여자 중 하나가 허묵이다. 허묵은 퀸의 현신이 진화의 지름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유연을 보내고 잠든 그날 밤, 허묵은 오랜만에 꿈을 꿨다. 흑백의 향장나무, 흑백의 핏빛 비, 흑백의 실험실. 화면이 끊임없이 바뀌며 오래된 TV처럼 깊숙이 묻었던 허묵의 기억들을 재생했다. 허묵은 기억의 길을 산책하며 액자 속 이야기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러다 색다른 화면이 허묵의 눈앞에 펼쳐졌다. 이 흑백의 세계에서 그 화면 속 뒷모습에만 색채가 있었다. 유연이었다. 유연은 머리칼을 만지며 저 멀리 눈부신 빛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허묵은 오랫동안 그녀를 바라봤다. 유연은 붉은 기운에 물들다 불꽃 가운데로 사라졌고, 얼마 후 다시 그녀가 나왔을 때 아름다운 색채가 유연의 몸에서 나와 가루처럼 허공에 퍼졌다. 은은한 치자꽃 향기가 풍겼다. 허묵은 그 향기를 따라 그림 속으로 들어갔다. 몇 번의 터치로 그려진 그림은 허묵이 들어서는 순간 무너졌고, 허묵은 유연이 반대 방향으로 달리는 것을 본다. '누구지? 그녀일까?' 허묵은 흐릿한 기억을 더듬었다. 생전 처음 본 사람인 게 분명한데 그 모습이 너무도 익숙하고 친근했다.(유연에 대한 기억이 무의식적인 감각에는 남아있는 걸까.) 심장이 불규칙하게 뛰기 시작했다. 허묵은 시선을 내리고 뒤돌아 떠나려 했지만 눈앞의 세계가 왜곡되면서 오래된 기억들이 하나하나 그의 뇌리를 스쳤다. 혀끝에 쓴맛이 느껴졌다. 허묵이 마침내 의식이 또렷해지는 것을 느끼고 눈을 떴을 때, 그는 자신이 어린 시절로 돌아갔음을 깨달았다. 허묵이 목에 두른 목도리는 불에 타듯 붉었다. 햇살 속으로 천천히 사라져 간 그 뒷모습처럼. 허묵은 자기도 모르게 그 뒷모습을 향해 손을 뻗었다. 허묵은 꿈에서 깨어났다.

경계가 보이지 않는 칠흑같이 까막 공간. 미약하게 깜빡이는 별빛만이 검은 하늘을 장식하고 있었다. 허묵은 자기 앞에 누워있는 유연을 바라봤다. 억눌린 기운이 꿈속까지 침범했는지 유연의 숨결이 무겁고 거칠어졌다. 유연은 뭔가에 저항하는 듯 입술을 달싹였고 주먹을 꽉 쥔 채 허공에 마구 휘두르기 시작했다. 허묵은 가까이 다가가 유연이 검은 피라미드 모양의 작은 상자를 쥐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허묵은 그 상자를 들고 미약한 빛에 의지해 자세히 살피고는 손에 꼭 쥐었다. "드디어···" 허묵은 이제 더 끔찍한 악몽에 시달리는지 미간을 한껏 찌푸리고 몸을 떨고 있는 유연을 바라봤다. 허묵은 불현듯 얼마 전의 꿈이 떠올랐다. 그림 끝에서 그 뒷모습은 자신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린 허묵은 눈을 크게 뜬 채 그녀가 그의 세계로 들어오게 놔두었다. 두려움과 불안에 떠는 그녀를 다독여주고 싶은 생각이 순간적으로 든 허묵이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결국, 허묵은 유연의 미간을 살짝 건드릴 뿐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연은 그 찰나의 온기를 느꼈는지, 속눈썹을 파르르 떨더니 주름진 미간을 폈다. 허묵은 상자를 다시 한번 움켜쥐고 유연의 얼굴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기다려온 것이 어쩌면 생각보다 일찍 나타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마침내, 시작할 수 있게 되었다.

+) 메인스토리 정주행 다시 해야 하나... 이해가 잘 안 됨. 나중에 다른 거 살펴보고 수정해야 할 것 같다.

 

 

 

5. 계획 밖의 일

: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한 사람만이 그의 계획 밖에 있었다.

허묵이 블랙스완 빌딩 꼭대기에서 헬리오스와 대화할 때다.

헬리오스가 허묵에게 '아레스가 특파팀 실험에 관여했다'고 들었다고 전한다. 물론 말도 안되는 소리였지만, 이 역시 허묵의 계획 안에 있었다. 허묵이 블랙스완을 떠난 이후에도 모든 계획은 예정대로 진행되었다. 수월한 나머지 연구 실패 소식을 접했을 때도 허묵은 놀라지 않았다. 이 연구는 1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진행되었고, 블랙스완이 수십 년 전에 그것을 풀 '열쇠'를 찾았다고 하더라도 끝내 진정한 방향을 찾을 수는 없었다. 얼마 전 진실의 경계를 접했던 허묵은 블랙 캐빈의 존재를 찾는 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입구는 폭포 뒤 이공간에 숨겨져 있었고, <기적의 발견>에 나왔던 노인의 공간 능력, 그리고 블랙스완이 만들어낸 소위 0차원 공간은 분명 허묵이 찾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다. 다방면에 걸친 실험이 모두 실패했고, 현존하는 조건에서는 시공 도약이 불가능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여 이를 위해 관련 Evol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내용이 보고서 마지막 페이지에 적혀있었다. 하얀 종이에 큼지막하게 적힌 '실패'라는 두 글자가 허묵의 눈에 거슬렸다. 허묵은 보고서를 내려놓고 생각에 잠겼다. 그는 그것 말고도 그 공간을 찾을 방법은 뭐가 있을지 생각 중이었다. 그리고 나서 유연의 행방을 찾으려 했다. 허묵이 결국 방법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이 결론은 잠시 허묵을 멍하게 만들었다. 그동안 사태를 장악해 왔다는 믿음이 그 순간 살짝 흔들렸다. 수많은 단서와 수없이 많은 비슷한 존재들을 발견했다고 해도, 거짓은 영원히 진실이 될 수 없었음으로 좀 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야 했다. 

한 달 전. 허묵은 신종 독감 바이러스 때문에 연구소에서 밤낮없이 바쁘게 지냈다.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은 실험 진도는 허묵이 일부러 통제한 결과였지만 언론은 허묵을 '천재'라고 부르는 데 전혀 인색하지 않았다. 바쁜 와중에도 허묵은 때때로 유연의 천진함을 떠올렸다. 유연은 허묵이 이 재난을 해결하리라 믿는지 모르겠지만, 허묵은 결코 구세주가 아니었다. 유연의 소식은 일부러 알아보지 않아도 여러 경로를 통해 허묵의 귀에 들어왔다. 허묵은 유연이 사건을 조사하고, 버려진 실험실이 숨겨져 있는 병원을 가도록 방관했다. 그리고 이런 소식을 모두 손에 쥔 채 조직에 전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유연이 그 축제에 갔다는 걸 알게 되자 허묵도 동요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허묵이 내려놓은 보고서 앞장엔 바이러스가 잠복 후 마지막으로 폭발하는 일정이 적혀 있었고, 그건 마침 축제가 시작하는 시간이었다. 허묵은 실험복을 벗고 진행 중인 실험을 내팽겨친 채 급히 떠났다. 누군가 뒤에서 어디로 가는지 물었지만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허묵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한 발 늦었었다. 초조해진 허묵은 얼굴을 찡그리며 가슴에 통증을 참았다. 갑작스러운 경적 소리에 허묵이 고개를 돌려 보니 버스 한 대가 유연을 향해 돌진하는 것이 보였다. 허묵은 무의식적으로 Evol을 사용해 얇은 빛의 장막으로 통제 불능인 버스를 그녀 앞에서 막았다. 유연은 운명을 체념한 듯 눈을 감은 채 절망과 피로가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멀리서 유연을 지켜보는 허묵의 가슴이 욱신거렸다. 머리 위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고, 허묵은 유연을 깊이 바라보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모퉁이를 벗어났다. 이것이 허묵이 마지막으로 본 유연의 모습이었다. 그날 이후 유연이 사라질 걸 미리 알았더라면 그때 허묵은 그녀 앞에 나타났을까? 허묵은 살짝 미소 지었다. 눈앞이 아득했지만, 그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가지 않았을 거라는 걸. 조수가 허묵 앞에서 실험 성공을 보고했지만, 허묵은 연구 성공에 조금도 기쁨을 드러내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여름이 지나 가을, 그리고 초겨울이 되었다. 새로운 최고생명과학연구소가 곧 건설될 예정이라 바쁜 일이 많아졌다. 블랙스완은 자취를 감춘 지 오래였고, 특파팀이 일부 Evolver 명단을 공표했다. 모든 것이 최초의 설계자가 바라는 대로 하나씩 맞물려 이어졌다. 올겨울은 유난히 춥고 눈도 예년보다 일찍 내렸다. 허묵은 눈을 보면서도 가슴을 움켜잡았다. 맹렬한 심장 박동은 허묵이 또다시 유연을 생각하고 있노라고 알려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허묵의 뇌리에 한 장면이 스쳤다. 그의 손으로 유연의 목을 조르자 그녀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들고 가장 약한 부분을 그의 눈앞에 내보였다. 그녀는 너무나 연약하고 무해해 보여서, 손에 조금만 힘을 주면 금방이라도 숨이 멎어 그의 품에 쓰러질 것만 같았다. 허묵은 이 알 수 없는 장면에서 금세 벗어났다. 허묵은 자신의 펼쳐진 손바닥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 분명 한 번도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마치 직접 경험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 감촉이 아직도 손바닥에 남은 것 같아 허묵의 손끝이 살짝 흔들렸다. (유연이 없었던 다른 시간선 기억(비밀 이야기 빙산 아래 참고)을 어렴풋이 떠올리는 허묵.) 허묵이 이런 장면을 보는 것은 전혀 놀라울 일이 아니었다. 이것은 블랙스완이 처음부터 가정한 추측이 성립한다는 걸 증명해 주었다. 하지만 허묵은 무엇이 일어났는지 더 알고 싶었다. 그는 그 일을 해낼 수 있을까? 허묵이 책상 위에 놓인 초대장을 집어 들었다. 초대장 아래에는 'A'라는 낙관이 찍혀 있었다. 불현듯, 허묵은 자신이 유연의 손을 잡고 키스하며 "이건 마지막 희생이에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연모시를 보았다.(마찬가지로 다른 시간선 기억) 허묵은 눈 앞에 펼쳐진 장면에 전혀 동요하지 않고 초대장을 갈기갈기 찢어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다. 그의 내리깐 눈에 순간 날카로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 

허묵이 연구소에서 떠났을 때는 이미 늦은 밤이었다. 눈은 그쳤고, 두껍게 쌓인 눈은 차가 지나갈 때마다 사각사각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가로등의 따스한 주황색 불빛이 허묵의 머리 위를 비추다가 갑자기 일그러지더니 그의 모습이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사거리에서 파란불을 기다리던 운전자는 순간 자신이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 눈을 비볐다. 멀리 떨어진 어느 장소. 허묵이 느닷없이 텅 빈 통로에 나타났다. 주위의 검은 금속 벽에는 차가운 빛이 감돌았다. 모퉁이에 있는 CCTV 카메라는 여전히 안개가 낀 것처럼 흐릿했다. 허묵은 고개를 들고 자기가 있는 곳을 살펴봤다. 그는 모든 걸 다 알고 있다는 듯 칠흑 같은 통로를 지나 끝을 향해 나아갔다. 통로를 지나는 순간 눈앞이 환해졌다. 이곳은 과학 기지의 로비였다. 둥근 돔형의 천장에서는 희미한 빛이 새어나와 땅 위에 은은하게 특파팀 표시를 비추고 있었다. 이곳은 아직 어둠 속에 잠들어 있었지만, 그 존재를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들이 원하는 건 적지 않아." 허묵은 모든 것을 눈에 담고 중앙 기둥 앞으로 다가갔다. 허묵은 스크린에 뜬 '정보 인증'을 보지도 않았다. 그의 눈동자가 금세 짙어지더니 사방의 빛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이어, 허묵은 기지의 핵심 구역으로 들어갔다. 허묵은 중앙에 놓인 기계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 한 사람 정도 수용할 수 있는 크기의 기계였다. 작동하진 않았지만 알 수 없는 Evol 파동이 느껴졌고, 은연 중에 그의 몸 안에 존재하는 Evol 유전자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일종의 본능적인 끌림처럼, 기계에 가까이 다가갈수록 통제가 어려워졌다. "그들의 실험은 곧 성공할 것 같군." 허묵은 제어 기기를 열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예전에 감춰뒀던 복잡한 코드를 입력했다. 그는 비밀이 드러나길 참을성 있게 기다리며 차가운 눈빛을 반짝였다. "성공을 한 걸음 앞두었다는 것도 결국 실패작일 뿐이지." 진화를 가속화하는 이 기계가 아무리 성공에 가까운 것처럼 보일지라도, 허묵이 포기했던 연구에서 개선된 실패작일 뿐이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실현 불가능했다. 그에 필요한 '유전자 모델'을 얻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핵심'이 완성되지 않으면 전체 기기는 빈 껍데기에 불과했다. 가벼운 소리와 함께 기계의 금속 표면이 천천히 펼쳐지면서 그 안에 깊숙이 숨겨졌던 것이 드러났다. 그 '핵'은 어둠 속에서 은은하고 부드러운 빛을 뿜어냈다. 지극히 순수한 Evol 에너지가 허묵의 몸을 물살처럼 스치며 그를 한순간 멍하게 만들었다. 허묵의 눈동자에 가득했던 충격은 숨김없이 억눌린 분노로 변했다. 어떤 끔찍한 추측이 허묵의 모든 이성을 앗아가며 머릿속 세포가 미친 듯이 빠르게 움직였다. 허묵이 구상했던 유전자 모델에 유일하게 부족했던 그 부분이 더해지자 실패한 모델이 완벽해졌단 사실이 놀라웠다. 허묵이 나지막이 쓴웃음을 지었다. 발산할 수 없는 감정은 허묵에게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들을 망치라고 외쳤지만, 이성은 그에게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진작에 생각했어야 했다. 아니, 어쩌면 그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무의식적으로 무시했던 걸까? 허묵의 계획은 완벽했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그의 계획 밖에 있었다.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허묵은 문을 열었을 때 낯선 느낌을 받았다. 그가 들른 적도 많지 않은 데다 생활의 흔적도 별로 없어서 집은 아주 썰렁했다. 그리고 유연이 여기 남겼던 흔적도 더는 남아있지 않았다. 

 

 

6. 기억의 파편

: 어쩌면 세상 모든 것은 허상이고, 그녀만이 유일한 진실일지도 모른다.

 

 

7. 프로파일링

: 그는 어둠 속에서 한 걸음 한 걸음 미래를 향해 나아갔다.

 

 

8. 천면

: 모든 가면과 거짓말은 유일한 진실로 통하고 있다.

 

 

9. 분계선 

: 세계의 격변은 소리 없이 방대해져 모든 준비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시즌 2


1. 진짜 목적

: 호적수가 되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을 수도 있다.

 

 

2. 탐구 천재의 길

: 운 좋게 허묵의 조수가 되자, 나는 색다른 탐구 여행을 시작했다.

 

 

3. 지나는 곳

: 오래된 물결은 결국 미래로 퍼져나가 길을 안내하는 방향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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